토쿄 코쿄, 일본 왕궁
코쿄

코쿄 (Kokyo)

코쿄는 현재 일본왕이 거주하는 곳이다. 과거에는 에도성이었다. 바깥에는 정원인 고쿄가이엔, 키타노마루 공원이 있고, 성 안의 혼마루, 니노마루 등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왕이 거주하는 코쿄는 미리 예약을 해야 관람할 수 있다.

에도는 토쿄의 옛이름으로, 1869년에 에도를 토쿄로 고쳤다. 에도성은 1457년 처음 지어졌고, 1590년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자기의 성으로 삼았다. 이후 토쿠가와 바쿠후의 성이었는데 메이지 유신 이후 왕의 거주지로 삼고 이름을 코쿄로 바꾸었다. 1949년 주변을 공원으로 개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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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방법]

JR 야마노테선, 츄오선, 토카이도선, 요코스카선, 케이힌토호쿠선, 케이요선, 무사시노선 : JR 토쿄역 마루노우치 츄오구치(중앙 출구)

토쿄 메트로 마루노우치선 : 토쿄역 4a,b 출구

토쿄 메트로 마루노우치선, 치요다선, 미타선, 토자이선, 한조몬선 : 오테마치역 C10 출구

토쿄 메트로 치요다선 : 니쥬바시마에역 2번 출구

토쿄 메트로 히비야선 : 히비야역 B6 출구

[코쿄] 고쿄 | Kokyo | 皇居 , こうきょ

JR 토쿄역 마루노우치 츄오구치(중앙 출구)로 나간다.

마루노우치 츄오구치(중앙 출구).

밖에서 본 모습.

토쿄역에서 나와 정면으로 똑바로 간다.

왼쪽이 코쿄가이엔이다. 사진의 버스가 있는 곳까지 가면 우치보리도리가 나온다. 우치보리도리를 따라 왼쪽으로 간다.

[크게 보기]

코쿄가이엔. 코쿄는 왕궁, 가이엔은 바깥 정원이란 뜻이다.

와다쿠라 분수 공원을 지나면 우치보리도리가 나온다.

우치보리도리. 가끔씩 단축마라톤대회가 열리는 듯하다. 검은 소나무(흑송, 쿠로마츠)들 사이로 니쥬바시가 보인다.

우치보리도리 동쪽에 있는 쿠스노키 마사시게 동상. 높이 3.9m. 제작기간이 6년이다. 1890년에 제작을 시작하여 1897년에 완성했다.

1331년 고다이고왕이 카마쿠라 바쿠후를 토벌 계획을 세우다가 발각되어 오히려 오키에 유폐되었다. 왕의 충신이던 쿠스노키 마사시게가 바쿠후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고,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왕의 진영에 가담하는 등 반란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1333년 카마쿠라 바쿠후가 멸망하고 고다이고왕이 직접통치를 선언했다.

그러나 왕은 급진적 개혁정책을 시행하여 기득권층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을 도와준 무사들을 홀대하여 불만을 사게 되었다. 1335년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반란을 일으켰고, 쿠스노키 마사시게는 고다이고왕의 명령으로 아시카가와 싸우다가 패배해서 자결했다.

아시카가는 쿄토를 점령하고, 따로 왕을 옹립하여 무로마치 바쿠후를 세웠다. 요시노로 달아난 고다이고왕의 남조, 아시카가가 내세운 코묘왕의 북조가 성립되어 남북조시대가 되었다.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 때 북조의 세력이 압도적으로 커져, 1392년 북조로 통합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메이지시대 때 왕에 대한 충성의 상징으로 동상을 세우게 되었는데, 북조 쪽에서는 그만큼 왕에게 충성을 바친 충신이 없어서 충신의 상징으로 남조의 쿠스노키 마사시게 동상을 세우게 되었다.

우치보리도리를 계속 가면 해자를 건너 히비야 공원이 나온다.

히비야 공원은 1903년에 만든 일본 최초의 서양식 공원이라고 한다. 히비야 공원을 지나면 긴자로 갈 수 있다.

다시 해자를 건너 돌아와서 서쪽으로 보면 사쿠라다몬이 보인다.

사쿠라다몬으로 나가면 일본 의회 의사당 등 관청거리로 갈 수 있다.

[크게 보기]

니쥬바시로 가는 길은 작은 자갈로 덮힌 광장처럼 되어 있다.

세이몬 앞의 다리들. 앞, 뒤 두개의 다리가 있다.

세이몬 이시바시. 돌로 만들어졌으므로 세이몬 이시바시(정문 석교)라고 한다. 후지산, 쿄토의 키요미즈데라와 함께 일본을 상징하는 사진에는 꼭 나오는 곳이다. 뒤의 건물은 후시미 야구라이다. 안내판에는 이 다리가 니쥬바시라고 되어 있으나 궁내청 홈페이지에는 뒤의 다리가 니쥬바시라고 되어있다. 뒤의 다리가 니쥬바시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 토쿄에 관광을 온 일본인들은 반드시 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토쿄에 다녀왔다는 증거 사진으로 왕궁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다.

앞의 세이몬 이시바시는 두 개의 아치가 물에 비춰져 마치 안경을 쓴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관광객들이 메가네바시(안경 다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코쿄가이엔 쪽에서는 빛의 각도가 맞지 않으면 이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코쿄 관람을 예약해서 니쥬바시 위에서 보면 확실하게 보인다(특히 오전에). 현지인들은 메가네바시라고 하면 잘 모르니까, 길을 물으려면 니쥬바시라고 물어야 한다.

세이몬 테츠바시(니쥬바시). 위로 지나가려면 코쿄 관람 예약을 해야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밖에서 볼 수 밖에 없다. 니쥬바시는 원래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마차 등이 지나가는 무게를 견디기 위해 축대에 걸치는 부분을 2중으로 보강하여 다리를 지었고 그래서 니쥬바시(이중교)라고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철강재로 새로 지어서, 세이몬 테츠바시(정문 철교)라고 한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에 칸토 대지진이 일어나 민심이 흉흉하자 이를 무마하고 그 기회에 사회주의자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일본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 불을 지르고, 폭동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퍼뜨리고, 이를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3,689개의 자경단을 조직하여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6,600여명의 조선인들을 죽창으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이에 대해 그 이듬해에 1924년 토쿄에서 제국 회의가 열린다고 하자, 의열단은 일본 수상과 조선 총독을 처단하기 위하여 의회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하였다. 김지섭 의사가 이를 거행하기 위해 토쿄로 잠입했으나 의회가 휴회를 하고 언제 다시 열릴지 확정되지 않자, 1924년 1월 5일 니쥬바시에 폭탄을 투척하고 체포되었다. '일본왕 살해 미수'라는 죄명으로 치바 형무소에서 갇히고, 1928년 2월 20일 44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순국하셨다. 일본 정부는 김지섭 의사의 사망 원인을 밝히지 않고 급히 화장해 버렸다.

김지섭 의사는 상하이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에서 '평생 뜻한 바 갈 길 정하였으니 고향을 향하는 길 다시 묻지 않으리' 라는 시를 남겼다.

다시 우치보리도리로 가서 코쿄 히가시교엔으로 간다. 마루노우치 빌딩 구역이 보인다. 일본의 주요 기업 본사들과 금융 기관들이 모여있는 일본 경제의 중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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