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장안문~팔달문

장안문~팔달문, 화성 (Hwaseong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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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문에서 화홍문까지

장안문에서 화홍문까지의 이동 경로 지도

장안문에서 화홍문까지의 이동 경로를 나타낸 지도이다.

장안문. 서울을 향한 북문이다. 사실상 화성의 정문이다. 장안문의 규모와 형태는 팔달문과 거의 같다. 전면의 옹성을 빼면 모습은 서울의 숭례문과 비슷하나 숭례문보다 더 크게 지었다. 한국전쟁 때 문루가 소실되었으나 화성성역의궤에 따라 복원하였다.

장안문의 지붕은 우진각이다. 지붕의 4면을 긴 추녀선으로 만들었다. 추녀선을 길게 만들기 위해서는 길게 휘어진 나무가 필요하다. 당시 이런 나무들은 구하기가 어려워 우진각 지붕은 경복궁, 창덕궁의 정문, 서울 4대문 같은 중요한 건물에만 사용되었다. 화성의 장안문, 팔달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지방의 성문에는 우진각 지붕 양식이 없다.

장안문 성 안쪽이다. 사진은 정조대왕 능행차연시이다. 매년 10월 화성문화제 행사시에 열린다. 장안문을 지나 팔달문 쪽으로 행진한다.

정조는 조선의 왕 중에서 행차가 많았던 왕이다. 정조의 행차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인 1795년의 화성 행차였다.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과 자신의 재위 20년을 정리하는 뜻으로 화성행차를 한다. 창덕궁 돈화문을 출발하여 돌아오는 8일 동안 대규모 행사가 행하여 졌다. 이 때 왕족, 신하, 궁녀, 호위무사까지 동원된 인원만 약 6,000명이 되었다. 이때 정조는 황금 갑옷을 입고 화성에 왔다. 왕의 행렬 앞에는 대장기와 용이 그려진 용기를 앞 세웠다. 화성 완공전에 행한 이 행사에서 왕의 강력한 위상과 부모님에 대한 효심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장안문 동쪽에 북동적대가 있다. 북서적대와 기능 및 형태가 거의 같다.

북동적대 부근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북동포루. 북동포루는 장안문과 화홍문의 중간지점에 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성 밖으로 약 9.3m 돌출되었다. 화성의 포루는 모두 벽돌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공심돈과 같이 안을 비워 적을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지붕이 성밖 쪽으로는 우진각, 안쪽으로는 맞배형 지붕형식을 취하고 있다. 북서포루와 같다.

화홍문(북수문). 화성에는 수원천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성내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다. 수원천과 성벽이 만나는 곳에 수문을 설치하고 북쪽에는 북수문, 남쪽에는 남수문이라고 불렀다.

화홍문은 돌로 만든 다리로 7개의 홍예 수문이 있다. 7개의 수문 중 가운데 수문이 좌우의 수문보다 넓고 크다. 홍예문 위로는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통로를 두었다. 성벽에 붙여서 화홍문이라는 누각을 세웠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지었다. 북쪽에는 벽돌로 여장(성가퀴)를 높이 쌓고 총구멍을 만들었다. 수원팔경의 하나로 꼽고 있다. 화홍문 동쪽 언덕 정상에 방화수류정이 있다.

화홍문은 대한제국에서 처음 발행한 1원짜리 지폐(1909년)에 그려졌다. 또한 수원 지역 성냥 회사인 수원 인촌 화학공업사에서 만든 성냥갑 도안으로도 사용되었다. 1922년 7월 대홍수로 파손되었다. 화홍문 복원을 위해 수원 사람들이 8년간 모금하여 1932년 5월에 복원하였다.

방화수류정(동북각루). 누각은 2층으로 되어 있다. 돌과 벽돌, 목재를 함께 사용한 누각이다. 팔작 지붕 여러개를 겹쳐 만든 지붕이 특이하다.

성 자체가 외부로 돌출되어 있고, 주위 경관이 수려하다. 이곳은 또한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바깥쪽의 연못은 용연이라고 한다. 연못이 내려다 보이는 용두라는 바위 위에 방화수류정을 세웠다. 달밤에 방화수류정이 용지에 비칠때면 달빛을 타고 선녀가 하강하는 듯한 환상에 잠기게 된다고 하여 이 아름다운 경치를 "용지대월"이라 하며 수원 팔경 중 제일로 여기고 있다.

화홍문에서 창룡문까지

화홍문에서 창룡문까지의 이동 경로를 나타낸 지도

화홍문에서 창룡문까지의 이동 경로를 나타낸 지도이다.

동북포루(각건대). 동북포루는 누각의 사면에 판문이 설치되었다. 내면에는 돌계단을 설치하였다. 은거한 선비들이 쓰는 모자인 각건과 모양이 비슷하다 하여 각건대라고 하였다.

동북포루에서 바라본 모습. 이곳의 지세가 주변보다 높아서 동암문과 동장대, 북암문과 방화수류정까지 엄호할 수 있는 위치이다.

동암문. 동장대로부터 서쪽으로 140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암문의 곡선미가 아름답다.

동장대(연무대) 앞 연무대 관광 안내소이다. 화성 열차가 출발하는 곳이다.

동장대 전경이다. 지형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언덕의 등성이가 솟아 성의 동쪽 구릉 지역 중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동장대(연무대). 군사들의 훈련을 지휘하던 곳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사방을 조망하도록 벽체를 설치하지 않았다. 뒤쪽에는 기와를 이용하여 영롱장을 쌓았다.

불랑기 5호. 동장대 뒤쪽에 있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휴대용 화포, 몸체 길이 72cm. 블랑은 프랑크라는 유럽인을 뜻하는 말로, 서양에서 만든 화포를 불랑기라고 한다. 몸체가 큰 1호로부터 작은 5호로 구분한다. 발사 틀의 구실을 하는 모포와 실탄을 장전하여 모포해 삽입해 발사하는 자포로 이루어짐. 여러개의 자포를 이용해 연속 사격이 가능해 조왜 7년 전쟁 이후 육전은 물론 해전에서도 위력을 발휘함으로써 조선 제일의 화기로 평가받고 있다.

동북공심돈. 화성의 동북쪽 모퉁이에 있다. 중국 요동 지방에 있는 평돈을 모방하여 벽돌로 동그랗게 돈대를 쌓아 타원형으로 만들었다. 공심돈의 높이는 6.8m이다. 내부에 나선형의 계단을 설치하여 일명 소라각이라고 한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벽에는 여러 개의 총구멍을 뚫어서 적을 공격하거나 감시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건물 아래쪽에는 온돌방을 만들어 군사들이 숙직할 수 있도록 하였다. 3층에는 누각을 세워 적의 동정을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사진 아래의 과녁은 국궁 활쏘기 체험장의 과녁이다.

[요금] 1,000원(1회 5발)

[여는 시간] 3월~11월 》09:30~5:50pm. 12월~2월 》09:30~16:30

[닫는 날] 비올 때, 기상조건이 나쁠 때는 운영하지 않는다.

동북노대. 동북공심돈과 창룡문 사이에 있다. 노대는 쇠뇌를 쏘던 방어 시설이다. 서노대와 역할은 같다. 그러나 건축 형태에 있어서는 서노대가 성벽 안쪽에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동북노대는 치성 위에 벽돌로 타원형으로 쌓아 만들었다.

창룡문. 화성의 동쪽문이다. 한국전쟁때 문루가 소실되었으나 화성성역의궤에 따라 복원하였다.

규모와 형식이 화서문과 거의 같다. 내외 홍예의 규모가 다른 것이 특징이다.

창룡문에서 팔달문까지

창룡문에서 팔달문까지의 이동 경로를 나타낸 지도

창룡문에서 팔달문까지의 이동 경로를 나타낸 지도이다.

동일포루. 창룡문 남쪽에 있다. 창룡문 일대의 공격에 대비해서 치성 위에 군사들이 몸을 숨기고 있다가 적을 공격하는 시설물이다. 체성까지는 돌로 치를 만들고, 치 위의 여장은 벽돌로 만든 후 3칸의 포루를 만들었다.

동포루. 포루는 치성과 비슷하나 돌출된 성벽내부를 비워 내부를 2층으로 꾸미고 여기에 군사들이 각종 포루를 가지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포루의 외벽에는 바닥에서부터 수많은 총구멍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포루의 벽은 적의 포격에 한 번에 부서지지 않도록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봉돈. 옛날에는 비상사태의 전달은 불빛과 연기를 이용하여 봉화로 연결하였는데, 이곳 화성의 봉돈은 용인 석상산의 육봉과 서로 연락하고 또 바다로는 홍천대의 해봉과 연락하였다. 낮에 연기를 올릴 때에는 연기가 흩어지지 않고 곧바로 올라가도록 하기 위해서 이리똥, 말똥을 말린 것을 주로 사용하였다. 근대에는 청솔가지, 쑥대 등을 사용하였다. 5개의 화독 중 평상시에는 남쪽의 첫째 화독을 이용하여 저녁마다 1개의 봉화를 올렸으며, 적이 나타나면 2개, 경계에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범하면 4개, 적과 접전시에는 5개의 봉화를 올려 비상사태를 전달했다. 내부는 3층으로 만들었으며 제일 높은 곳에 다섯 개의 화두를 설치하였다. 대부분의 봉돈은 봉화대란 이름으로 성밖의 산봉우리에 있으나 화성의 봉돈은 성안에 설치되어 있다.

동이포루. 봉돈의 남쪽에 있다. 봉돈 방면 공격에 대비하여 만들었다. 동일포루와 비슷한 건축양식이다. 다만 만든 모양에서 모서리가 둥근 것이 특징이다.

동남각루. 화성에서는 성곽 주위로 성밖의 경계를 살피기에 좋은 곳 네 군데에 각루를 세웠다. 동남각루는 동쪽 수원천의 위쪽 구릉위에 성벽이 꺽인 모퉁이에 있다.

성이 산세 때문에 동남각루에 이르러 가파르게 뚝 끊어진다. 누각이 성 위로 불쑥 나와서 멀리까지 평야를 조망할 수 있다.

남수문은 수원천이 화홍문에서 흘러 내려와 화성과 다시 만나는 지점에 만든 수문이다. 남수문은 수원천의 수량이 불어나는 것을 대비해서 9개의 수구를 만들었다. 수문 위로는 문루 대신에 벽돌을 쌓아 긴 포사를 만들었다. 1922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다. 이 동네 지명 남수동이 남수문에서 유래되었다.

동남각루를 내려와 팔달문시장을 지나면 팔달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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