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분황사
분황사

분황사

분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3년(634년)에 창건되었다. 창건 초기에는 황룡사에 버금가는 아주 거대한 절이었지만, 현재에는 법당과 탑만 남아있는 작은 절이다. 분황사의 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서 쌓은 탑이다. 즉 일반적인 흙 벽돌탑이 아니라 돌 벽돌탑이다.

1990년부터 분황사 발굴작업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발굴 결과, 처음 지을 때는 1탑 3금당식 가람배치였고, 뒤에 1탑 1금당식으로 변하는 등 3차례에 걸쳐 가람배치가 바뀐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지을 때 3금당이 나란히 배치된 것이 아니라 品형태로 지어졌고, 황룡사와 마찬가지로 2중 회랑을 갖춘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은 탑과 보광전만 있는 작은 절이지만, 발굴결과로 동서로 너비가 138.4m나 되는 거대한 절이었다. 황룡사가 동서로 176m이므로 분황사는 황룡사만큼 큰 절이었다.

원효스님이 분황사에서 출가했으며, 분황사에 머무르면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 고려시대에 원효스님을 기리는 비석을 세웠으나 지금은 받침돌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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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1,300원

[여는 시간] 08:00~18:00 / 겨울에는 17:00까지

[닫는 날] 없음

[가는 방법]

10번 버스 : 분황사 버스 정류장에 내린다. 18번, 100번, 150번 버스를 타도 된다.

700번 버스 : 분황사 버스 정류장에 내린다. 신경주역, 고속버스(시외버스) 터미널, 경주역에서 탄다. 급행 버스이므로 빠르지만, 배차 간격이 35분 이상으로 길다.

경주박물관, 안압지에서 걸어 간다. 황룡사 터를 지나서 간다.

[크게 보기]

경주 분황사

분황사 버스 정류장. 10번, 700번, 100번, 150번, 16번, 18번 버스가 선다.

주차장 안쪽에 입구가 있다. 이 문은 정문이 아니다. 분황사 터를 발굴하는 중이어서 주차장 쪽에 임시로 낸 문이다.

경주 분황사

입장료 1,300원. 여름에는 저녁 6시까지. 겨울에는 저녁 5시까지.

경주 분황사

분황사 경내. 왼쪽에 법당(보광전)이 있고 오른쪽에 탑이 있다.

보광전과 탑.

경주 분황사

분황사 돌탑. 분황사 탑은 벽돌탑이 아니고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서 쌓은 탑이다. 이러한 탑을 모전탑, 또는 모전석탑(模磚石塔)이라고 한다. 분황사 탑은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시대의 돌탑들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라고 한다. 기단의 규모나 탑의 모양으로 보아 7층 혹은 9층 정도의 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 네모서리에 돌사자 등 동물상이 있다. 1층에 돌로 만든 여닫이 문이 있고, 안에 불상을 모시는 작은 방(감실)이 있다. 탑의 4면에 작은 방이 있는 점으로 보아 나무탑의 영향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국보 30호이다.

오랜 세월 탑을 지키던 인왕상(仁王像)은 비와 바람에 많이 닳았다. 인왕(금강역사)은 불교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인왕을 금강역사(金剛力士)라고도 부른다. 분황사의 인왕상은 현존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왕상이다.

불교 사찰의 인왕상들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권법 자세를 취하거나 무기를 들고 있다. 또 인왕상들은 상체를 벗고 있는데, 나체 조각상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례적인 경우이다.

경주 분황사

탑 모서리에 돌사자 상이 있다.

경주 분황사

탑의 설명판에는 네 마리 모두 돌사자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두마리는 모양이 돌사자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경주 분황사

법당과 탑 사이에 돌 우물이 있다.

분황사 팔각 돌우물.

당나라 사신과 하서국 인간들에게 잡혀간 시원찮은 호국룡(나라를 지키는 용)에 관한 전설이 있는 우물이다. 나라는 커녕 자기 자신조차 못지켜서 잡혀간 무능한 호국룡들이 세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분황사 우물의 호국룡이었다고 한다. 원성왕이 부하들을 시켜 세마리를 모두 구출해와서 각각의 호수에 넣고, 분황사 용은 다시 우물 속에 넣었다고 한다. 부끄러워서 숨었는지 안을 들여다 봐도 용이 보이지 않았다. 왕의 권위를 높이려고 호국룡들을 들러리로 세워 망신을 시키는, 꾸며낸 이야기이다.

경주 분황사

담쪽에 화쟁국사 기념비 받침돌이 있다.

경주 분황사

화쟁국사 기념비 받침돌. 화쟁국사란 고려 숙종이 원효스님에게 내린 시호이다. 고려 명종 때 비석을 세웠다. 비석은 사라지고, 받침돌만 남았는데,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이 비석 받침돌이 화쟁국사비의 받침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여 '화쟁국사 비석의 유적'이란 글씨를 새겼다.

법당인 보광전.

분황사 보광전의 약사여래부처상. 조선 영조 50년(1774년)에 만들어 졌다는 기록이 약그릇 뚜껑 안쪽에 새겨져 있다. 제작 연대가 확실하여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경주의 각종 표지판, 안내판에는 오자가 상당히 많다. 분황사 약사여래입상 설명 중 영어판에 분황사를 Bunwhangsa로 썼다. 다른 설명판에는 다 바르게 썼는데 이 곳에만 hwang를 whang로 썼다.

경주 분황사 보광전

분황사의 법당은 규모가 작은 편이다.

분황사 정문과 황룡사 터로 가는 길

경주 분황사

출입구에서 나와 담을 따라 돌아가면 분황사 정문이 있다.

경주 분황사

정문은 발굴 작업으로 인해 방치 상태이다.

경주 분황사, 구황동 당간지주

정문 앞에 당간지주가 있다. 분황사와 황룡사 사이에 있어 어느 절의 당간지주인지 모호했지만, 분황사의 발굴 결과 현재는 분황사의 당간지주일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높이 3.6m 이다.

'당간'의 뜻은 '당'이라는 깃발을 거는 깃대를 말한다. '지주'는 받치는 기둥, 지지대이다.

경주 분황사, 구황동 당간지주

두 기둥사이의 바닥에 돌거북이 있다. 다른 당간지주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화려한 양식이다.

경주 분황사, 황룡사 터

분황사 정문 맞은 편에 황룡사 터가 있다. 원래 분황사의 중문은 지금 정문보다 더 남쪽에 있었다.

경주 분황사, 황룡사 터

정문 앞에 황룡사 터 안내 표지가 있다.

경주 분황사, 황룡사 터

분황사 정문에서 보면 앞에 황룡사 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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