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류지

코류지 (Koryuji Temple)

코류지는 603년에 창건된 절로서, 쿄토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623년에 창건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신곤슈(真言宗)사찰이다. 신레이호덴에 일본 국보인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있다. 케이큐인은 단층의 팔각형 건물로 일본 국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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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경내 무료 / (신)레이호덴 : 700엔

[여는 시간 (입장 마감 시간)] 3월~11월 》09:00~17:00 / 12월~2월 》09:00~16:30

[닫는 날] 없음

[가는 방법]

11번 시버스 : 우쿄쿠 소고쵸샤마에(右京区総合庁舎前) 버스 정류장

쿄토버스 61, 62, 63, 65, 71, 72, 73, 75번 : 우즈마사ㆍ코류지 마에 버스 정류장 (쿄토역 : 71, 72, 73, 75번. - C6승강장)

케이후쿠 전철(란덴) 아라시야마 본선 : 우즈마사ㆍ코류지역. 쿄토 시죠오미야(四条大宮)역에서 탄다.

JR 사가노선(산인 혼센) : 하나조노역. 조금 멀다. 쿄토역에서 탄다.

토에이 우즈마사 영화촌(에이가무라)에서 걸어간다.

쇼토쿠 태자는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쇼토쿠 태자가 '내가 귀한 불상을 가지고 있는데 누가 이를 절에 안치하겠는가'고 묻자 재상(藏卿)인 진하승(秦河勝 : 하타 노 카와카츠)이 나서서 이 불상을 안치하기 위해 자신의 영역이었던 우즈마사에 하치오카데라(蜂岡寺, 코류지의 옛이름)를 창건했다고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코류지는 쇼토쿠 태자에 의해 건립된 7개의 절 중 하나이다. 코류지는 우즈마사데라(太秦寺), 하치오카데라(蜂岡寺), 하타데라(秦寺), 하타기미데라(秦公寺)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하타(秦)' 일족은 일본에 양잠과 직조기술을 전해준 신라계 이주민들이다. 이들은 당시 일본에서 가장 뛰어난 견직물 제조 기술과 생산력을 바탕으로 많은 부를 축적했다. 진하승은 쇼토쿠 태자를 재정적으로 지원했다고 추정된다. 코류지가 있는 지역을 太秦(우즈마사)지역이라고 하는데 '큰 하타'라는 뜻이다. 太秦(큰 하타)라고 쓰고 우즈마사라고 읽는데, 이는 유랴쿠(雄略)왕이 이 지역에서 비단을 생산하고 관리하던 하타노사케기미(秦酒公)에게 우즈마사(禹豆麻佐)라는 성씨를 하사하였고, 그 성씨가 땅이름으로 된 것이다.

[코류지] 고류지, 광륭사 | Koryuji Temple | 廣隆寺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미륵반가상

코류지 소장 목조미륵반가상

일본 국보인 목조 보관 미륵보살 반가사유상(머리에 관을 쓰고 있는 미륵상, 높이 125㎝. 오른쪽 사진)은 우리 나라 국립 중앙 박물관에 있는 국보 83호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높이 93.5㎝. 왼쪽사진)과 모습이 흡사하다. 1951년(昭和 26년) 일본의 과학자들이 이 불상이 적송(赤松)으로 제작되었다는 분석결과를 공표하였다. 일본 조각사 논총(日本彫刻史論叢)을 쓴 니시카와 쿄타로(西川杏太郞)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적송으로 나무 조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아스카, 하쿠호시대까지는 녹나무(樟木, くすのき)로 불상을 제작하였고, 그 이후는 주로 편백나무(檜, ひのき)로 불상을 만들었으며, 비자나무, 느티나무 등도 사용하였으나, 소나무로 불상을 만든 적은 없다고 한다.

소나무는 해송(흑송, 곰솔)과 육송(적송)으로 나누는데, 적송은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 동북아시아 모든 나라에 있다(편백나무는 일본 고유수종이다). 우리나라 학자들 사이에서는 보관반가상의 적송을 춘양목(금강소나무)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육송(적송) 중 특히 목질이 단단한 좋은 재목용 소나무를 우리나라에서는 춘양목 또는 금강소나무라고 한다. 춘양목은 봉화, 강릉 등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지역과, 충남, 전북 등지에 자생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보관반가상의 재질이 춘양목으로 '밝혀졌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 춘양목이라 추정한 산림학자도 1400여년 전의 나무조각에서 그 나무의 출생지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를 하고 단지 '추정'했을 뿐이다.

흔히 "한 대학생이 코류지불상에 반해서 만지다가 불상의 손가락을 부러뜨렸는데 부러진 손가락을 분석해보니 우리나라의 춘양목이었다"라는 근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적송으로 분석된 것은 손가락을 부러뜨린 때보다 10년 전이고, 적송이라는 것은 분석가능하지만 그것이 춘양목인지를 확정하는 것은 당시 및 현재 기술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부러진 손가락을 수리한 니시무라 코쵸의 말에 의하면 1960년 한 학생이 장난을 치다가 보관반가상의 넷째 손가락(약지)를 부러뜨렸고 당시 미술원 국보 수리소 소장이던 니시무라 코쵸(西村公朝)는 직원 3명과 함께 일주일간 코류지를 왕래하면서 접합하였다. 당시 부러진 곳은 손가락 제2관절 앞의 얼마 안 되는 치수였다고 한다. 이 사실에 대해서도 쿄토의 한 대학생이 반가상을 보고 흠모하여(또는 감동하여) 껴안다가 부러뜨렸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코쵸씨는 장난을 치다가 부러뜨렸다고 했다.

이 시기의 일본불상들은 각 부분을 만들어 조립한 것들이지만 이 보관반가상은 한반도의 불상들과 같이 통나무를 깎아서 만든 것이다. 제작 기법으로 보아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코류지에는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우는 미륵상'이라는 보계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상투를 튼 미륵상, 높이 66.4㎝)이 하나 더 있다. 녹나무로 만든 것이다. 역시 일본 국보이다. 쇼토쿠 태자가 진하승장관에게 준 불상이 이 보계반가상이라고 추정된다. 보계반가상이 백제에서 유래했다고 15세기 문헌 [山城州葛野郡楓野大堰鄕廣隆寺由來記]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보관반가상과 보계반가상 둘 다 신라에서 온 것이라 추정하는 일본학자도 있다.

우리나라 국립 중앙 박물관에 있는 국보 83호 금동 미륵 반가사유상은 그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 논란이 있다. 이 불상은 1912년 도굴범 카지야마 요시히데(梶山義英)으로부터 당시 문을 연 이왕가 박물관(대한제국의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을 일제가 격하시킨 것이다)의 관장 스에마츠 마히코(末松熊彦)가 거금 2천6백원을 주고 구입했다고 전해지고 있다(당시 쌀 한가마가 5원정도였다고 한다). 이왕가 박물관은 일본 도굴범들이 도굴한 우리 문화재를 대한제국의 세금으로 구입하여 문화재 도굴을 장려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 도굴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미륵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삼국 모두에서 제작했는데, 1966년 경북 봉화 북지리에서 석조 여래좌상의 하반신 부분(높이 1.6m, 추정복원높이 2.5m. 경북대학교 박물관 소장)이 발견된 이후 신라에서 제작되었다는 주장이 다수이다. 석조 여래좌상의 하반신 두 다리의 형태와 2단으로 옷주름을 처리한 방식이 금동 미륵 반가사유상의 하반신과 비슷한 방식이고, 돌부처상은 제작이후 옮기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둥근 모습과 단순한 조형성으로 인해 백제에서 제작된 것이라는 주장도 여전히 있다.

일본서기와 부상략기, 일대요기 등 일본의 문헌들에 스이코여왕 24년(서기 616년) 7월에 신라 제26대 진평왕이 불상을 보내와 이를 하치오카데라(지금의 코류지)에 안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코류지를 창건한 진하승이 신라계 도래인이고 코류지의 불상이 신라에서 왔다는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다수의 일본역사학자들은 보관반가상이 신라에서 온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강력하게 추정되고 있지만, 확정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다.

니오몬(인왕문). 정문으로 남대문이라고도 한다.

니오몬을 지나면 아카도라고 부르는 코도(강당)가 있다.

아카도. 9세기에 제작된 아미타 여래 좌상이 있다.

아카도를 지나면 혼도(본당)가 나온다.

혼도 앞에 코류지의 연혁이 쓰인 돌이 있다. 1971년에 코류지의 주지였던 키요타키 히데히로(淸龍英弘)가 연혁비를 세우면서 엉뚱하게도 “진하승(秦河勝 : 하타 노 카와카츠)은 진시황제의 후손이다”라고 새겼다. 코류지 승려들은 당나라를 세운 왕은 '당'씨이고 진나라를 세운 왕은 '진'씨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당나라를 세운 왕은 '당'씨가 아니라 '이'씨이며, 진나라를 세운 시황제(秦始皇帝)는 '진'씨(秦氏)가 아니고 '영'씨(瀛氏)이다. 진하승이 신라에서 왔다는데 대해서 일본 학자들은 별다른 이견이 없으며, 쿄토의 공식홈페이지들에도 한반도에서 온 도래 호족이라고 쓰고 있다. 한반도에서 건너온 유즈키노기미(弓月君-하타씨족과 백성들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온 귀족)가 '원래는 진시황제의 후손이다'라고 했다는 설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연대상으로 연결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혼도(본당).

혼도 왼쪽에는 신레이호덴과 케이큐인으로 들어가는 매표소가 있다. 그 외 경내는 무료이다.

입장료 700엔.

매표소를 지나 오른쪽에 신레이호덴이 있다. 신레이호덴에는 일본 국보인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있다. 사진 촬영 불가이다.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일본 국보이다. 국보 제1호라고 쓴 것도 아니고 지운 것도 아니다.

1949년 호류지, 1950년 킨카쿠지에서 잇따라 불이 나자, 문화재의 체계적 보호를 위해 1951년 6월 9일, 일본 문화재 위원회가 국보 목록을 만들었다. 유형문화재 중 조각 부문 목록에 이 반가사유상이 맨 위에 올라있다. 즉, 목록상 조각 부문의 지정 번호(등록 번호)가 제1호라는 것이고, 전체 문화재 중 가장 중요한 국보라는 뜻으로 국보 제1호인 것은 아니다. 즉, 국보 1호가 아니라 그냥 '국보'이다.

예전에 국보 1호로 지정되었다가 지금은 지정제도를 없앴다는 말도 있으나 잘못이다. 처음부터 국보 1호로 지정된 적 자체가 없다.

쿄토시 공식 홈페이지들 중 일부는 국보 지정 제1호라고 쓰고 있다. 조각 부문의 지정 번호가 1호라는 뜻이다. 코류지는 국보 제1호라고 자랑하고 싶은가 보다. 노란 색으로, 쓴 것도 아니고 지운 것도 아니게 국보 제1호라고 표시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중요도 기준으로 국보 번호를 매기지는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보와 보물 번호는 1962년에 시행된 문화재 보호법에 의해 문화재로 지정된 순서대로 번호가 부여된 것이다. 중요도 순서가 아니다.

매표소를 지나 왼쪽에 케이큐인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케이큐인(桂宮院). 국보이다.

코류지 가는 길

코류지 부근 약도.

토에이 우즈마사 영화촌에서 올 때에는 남쪽으로 직진하다가, 사진에 보이는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코류지가 나온다.

코류지 니오몬 근처. 오른쪽 담벼락을 따라가면 토에이 우즈마사 영화촌이 나온다.

코류지 니오몬에서 바라본 케이후쿠 전철 우즈마사 코류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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