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바이욘
바이욘

바이욘 (Bayon)

바이욘에는 크메르의 미소라고 불려지는 인물상이 있다. 탑 4면을 돌아가며 사람 얼굴 형상을 하고 있는 신비로운 상(사면상)들이 중앙성소를 따라 수십개가 세워져 있다. 바이욘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큰 사면상의 누구인지, 어떻게 조각하듯 거대한 돌을 쌓아 올렸는지 궁금점을 갖게 된다. 바이욘에 1층 회랑에는 앙코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부조되어 있다. 생선 파는 아주머니, 닭싸움 등 참 재미나게 부조한 작품에 웃음이 나온다.

원나라 사신 주달관은 진랍풍토기에서 바이욘에 대해서 도성의 중앙에 금탑 1좌와 그 주위로 석탑 20좌, 석실 100여칸이 있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사암의 회색이 폐허처럼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황금빛 찬란한 곳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다.

바이욘 자리에는 원래 수리야 바르만 1세가 건설한 힌두 사원이 있었다고 한다. 수리야 바르만 1세(1011년~1050년)는 영토를 태국까지 넓혔으며, 서 바라이 호수를 만들고, 앙코르 톰의 기초를 다진 왕이다. 이 사원을 자야 바르만 7세가 1191년 증축하여 불교 사원으로 바꾸었다. 바이욘 사원에는 건축학적 변경도 있었다. 처음에는 중앙 성소가 땅에 맞닿아 있었는데, 나중에 35m 높이의 테라스 위에 올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날 티켓을 오후 늦게(16:45분 이후) 구입하였다면, 구입한 날 바로 바이욘으로 가서 일몰을 구경할 수 있다. 오후 5시 30분 정도에 검표원이 퇴근 하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 다음날 입장권이라고 하더라도 항상 소지하는 것이 좋다. 티켓 오피스에서 뚝뚝 기준으로 12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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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앙코르 공통권 : 37US$(1일권) / 62US$(3일권), 72US$(7일권). 유적지마다 입장권을 검사한다

[관람 시간] 새벽~저녁 / 매표소 운영시간 05:00~17:30

[닫는 날] 없음

[가는 방법]

뚝뚝 : 12~15US$정도(1일)

택시 : 23~25US$정도(1일)

자전거 : 1~2US$정도(1일)

바이욘 사원을 보면 불교의 절이라는 느낌보다는 다른 앙코르 유적의 힌두 사원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앙코르 시대에 불교가 국교가 된 시기가 자야 바르만 7세때였고, 그 외는 힌두교를 믿었으므로, 불교 독자적인 건축 양식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힌두 사원 양식을 사용하였다.

[바이욘 부조 자세히 보기]

• 바이욘 1층 회랑

• 바이욘 2층 회랑 | 바이욘 동쪽 부조 남쪽면 / 바이욘 남쪽 부조 / 바이욘 서쪽 부조 / 바이욘 북쪽 부조

자야 바르만 7세 건축물 지도

크메르 제국의 건축왕이라 불릴만큼 많은 건축 사업을 한 왕이 자야 바르만 7세이다. 바이욘에 대한 건축학적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앙코르 톰 남문, 따 프롬, 프레아 칸, 니악뽀안, 따 솜, 반띠아이 끄데이를 연관시켜서 보는 것이 좋다. 각 사원들만의 특징도 있지만, 자야 바르만 7세 때에 유행한 건축 방식을 개별 사원에서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하였고, 차이점은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바이욘을 건설한 자야 바르만 7세는 현재 캄보디아 사람들에게서 크메르 왕국의 왕들 중에서 수리야 바르만 2세와 함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존경받는 왕이다. 앙코르 와트 건설자인 수리야 바르만 2세(참파를 식민지화 했다)가 죽자 전국은 혼란에 빠지고, 점차 주변국의 세력은 강해진다. 결국 1177년 참파(베트남)에게 져서 왕은 살해 되고 수도는 빼앗기고,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 이때 자야 바르만 7세가 등장해서 빼앗겼던 수도 앙코르 톰을 1181년 톤레샵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다시 되찾는다. 대외적으로는 앙코르 왕국의 국가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였으나, 대내적으로는 반대 세력인 귀족과 브라만 사제들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통적인 데바 라자 의식을 하지 않고, 불교식의 부다 라자를 통해 왕위에 오른다. 아버지가 자신이 왕이 된 후 나중에 추서된 왕(다수 견해)이라서 왕위 정통성이 약하였고, 서민들이 믿던 불교를 믿으면서 상류 계급과의 마찰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원 건축을 통해서 왕위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하였고, 도로를 정비하고, 전국에 병원과 숙박 시설을 짓고, 관개 수로를 확충하는 등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사원 건설과 정복 전쟁에 많은 비용이 들어갔고, 자야 바르만 7세 사후에 주변 국가의 성장으로 크메르 제국은 서서히 힘을 잃어가게 된다.

앙코르 톰 지도

앙코르 톰 주변 지도. 바이욘은 성곽 도시인 앙코르 톰 정중앙에 지어졌다. 앙코르 톰의 각 문에서 대략 1.5km 떨어진 곳이다.

앙코르 톰 남문

앙코르 톰 남문이다. 남문을 통과해서 직진한다.

앙코르 톰 북문, 동문(승리의 문)을 통해서도 바이욘으로 갈 수 있지만, 짧은 여행 일정의 여행객은 대부분 앙코르 와트를 보고, 앙코르 톰 남문을 본 후에 바이욘으로 간다.

앙코르 톰 바이욘

앙코르 톰 남문에서 바이욘까지는 1.46km이다. 바이욘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바이욘의 남쪽 사면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에 보이는 삼거리에서 오른쪽(동쪽)으로 간다.

사진에 보이는 삼거리에서 입장권 검사를 한 뒤, 바이욘 남쪽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원래 출입구인 동쪽으로 가기를 추천한다. 그러나 바이욘의 전체적인 멋진 광경을 사진에 담으려면 서쪽으로 가서 사진을 찍기를 추천한다.

바이욘 세계문화유산

삼거리에 세계문화유산 표지석이 있다. 앙코르 유적은 1992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바이욘 지도

바이욘 지도. 바이욘은 동쪽 출입구에서 관광을 시작한다.

코끼리 테라스나 바푸욘을 구경한 사람들은 바이욘의 북쪽부터 관광을 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도 동쪽 출입구에서부터 관광 하기를 권한다.

바이욘 입구

바이욘의 동쪽 입구. 뚝뚝이나 택시를 탄 경우 이곳에 내려준다.

앙코르 톰 남문에서도 설명하였듯이, 위의 사진과 같이 아침 9시 정도에 가면 사람들이 매우 많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아침을 먹고, 대부분 8시~10시 사이에 앙코르 톰 남문을 지나고, 8시 30분~10시 정도에 바이욘을 감상하는 패턴을 보인다. 패키지 여행의 경우에는 일정상 사람들이 매우 붐비는 시간대에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이동 경로도 거의 겹친다. 아래 사진은 사람들이 적은 11시 정도에 촬영한 사진이다. 그럼 바이욘 관람을 11시 이후에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하지만 오전 11시~오후 3시 사이는 햇빛이 가장 강하다. 그늘이 적은 바이욘에서 부조와 사면상을 정오경에 본다는 것은 힘들 수 있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관광을 시작하거나, 오후 늦게 바이욘으로 가면 사람도 적고 강한 햇빛도 피할 수 있다.

바이욘 표검사

바이욘의 동쪽 입구. 계단을 올라가자 마자 입장권을 검사한다. 동쪽 출입구가 주 출입구인데, 기단이 2단으로 되어 있다. 오른쪽에 나가와 사자상이 있다.

바이욘 나가

바이욘 사원의 수호신인 나가의 훼손이 심하다. 바이욘의 나가는 가루다가 나가 어깨를 타고 있는 형상이다. 자야 바르만 7세 때의 앙코르 유적 특징 중의 하나이다.

가루다(Garuda)는 독수리의 얼굴에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비슈누 신이 타고 다니는 상상의 동물이다. 앙코르 유적에서는 비슈누 신의 화신인 크리슈나가 가루다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가루다 다리쪽과 팔쪽을 보면 날개가 빗금으로 새겨져 있다. 가루다는 주로 서있는 자세나 하늘을 날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고, 두 팔을 하늘을 향해 위로 벌리고 있다.

가루다는 우유 바다의 휘젓기때 아난타가 뽑은 만다라 산을 바다로 옮기는 일을 하였다.

라마야나 이야기중 랑카 섬 전투 중의 이야기에도 가루다가 나타난다. 아수라 라바나의 아들 인드라지트가 휘두른 뱀 창(나가파사, Nagapasha)으로 인해서 라마와 락슈마나는 온 몸이 뱀으로 꽁꽁 묶이고는 기절해 버린다. 정신을 차린 라마가 죽을 것 같다면서 원숭이 부대에게 후퇴할 것을 권한다. 이에 동맹군인 원숭이들이 놀라면서 군의 사기도 떨어진다. 뱀 창에 묶인 라마를 구하기 위해 하늘에서 가루다가 내려왔다. 독수리인 가루다와 뱀은 천적이었다. 가루다는 라마와 락슈마나의 뱀들을 쫓아내어 상처도 치료해주고, 라마가 이 전쟁에서 지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려준다.

가루다는 현재 인도네시아를 상징하는 문장인 인도네시아 국장,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회사의 명칭에 사용하고 있다.

바이욘 사자상

바이욘 사자상의 경우 유심히 보지 않으면 놓칠 수 있다.

바이욘 참배로

바이욘의 동쪽 고푸라. 입구에서 1층 회랑 동쪽 고푸라까지는 약 57m의 긴 참배로가 있다.

바이욘 입구

사람들의 방향이 2방향이다. 직선으로 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2층을 거쳐, 3층 사면상을 먼저 보기 위해서 올라가는 사람들이고, 왼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은 1층 회랑의 부조를 먼저 보러가는 사람들이다.

동선상 1층 회랑을 먼저 보고, 3층으로 올라가기를 권한다.

바이욘 지도

바이욘 1층 회랑을 모두 돌아 보는 것이 좋지만(약 2~3시간 소요), 대부분은 동쪽(크메르군의 행진)과 남쪽(톤레삽 전투)의 일부 핵심 부조만 구경하고, 3층 중앙 탑으로 올라간다. 시간이 없는 관광객은 위 두 면의 부조외에는 특별히 재미난 부조가 있거나 특징적인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생략해도 괜찮다.

바이욘 전체 크기는 동서 230m, 남북 150m로 직사각형 사원이다. 1층은 동서 156m, 남북 141m이다. 2층은 동서 80m, 남북 70m이다. 중앙 성소의 중앙탑는 둥글고, 지름이 25m이고, 높이가 43m이다.

1층 회랑 남쪽에서 3층 가기

바이욘 수문장

화살표를 따라가면 1층 회랑 부조가 나온다. 동쪽 출입문 앞 양쪽에 목이 없는 수문장(드바라팔라, Dvarapala)이 있다.

바이욘의 목 없는 드바라팔라

수문장의 목이 없는 이유에 대해 앙코르 와트 입구 사자 꼬리와 같이 인접국가인 참파, 아유타야와의 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 목을 벤 이유가 전리품의 성격보다는 주술적 의미에서 크메르의 국력 약화를 바라면서 적군이 베어버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가 있다. 앙코르 와트의 불상이나 프레아 칸의 수문장의 목이 없는 이유도 같은 이유로 설명한다.

유독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만 훼손 당한 것이 아니라, 이 당시 전쟁을 통해 인접 국가인 태국의 불상 등도 전쟁 중에 머리가 잘려나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이욘 1층 회랑

1층 회랑 부조는 크메르군의 행진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회랑은 원래 천장이 덮여 있었다. 나무 데크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관람하면 된다.

바이욘 남쪽 출입문

톤레샵 호수에서의 전투 장면이 끝나면 바이욘의 남쪽 회랑 중간쯤 된다. 이 곳에서 사면상을 보기 위해 2층을 지나 3층으로 많이 올라간다.

바이욘 도서관

바이욘 1층 회랑 안쪽으로 들어오면 동쪽에 도서관이 있다.

앙코르 유적지 중앙 성소 앞에는 일반적으로 도서관이 있다. 좌우 마주보고 있는데, 이 곳에 힌두 신화 이야기의 주요 장면이 새겨져 있다. 그래서 도서관의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위의 건물에서 책이 발견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유적지와의 관련상 도서관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이욘 2층 회랑 부조

바이욘 2층 회랑에도 재미있는 부조가 많이 새겨져 있으므로 시간이 많은 관광객들은 한번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바이욘 2층 내부 회랑 부조에 사원 건설 장면이 부조되어 있다. 모래를 다져 기초를 만드는 장면, 건물의 기둥은 어떻게 세우는지의 장면, 돌을 나르고 쌓는 장면을 그려놓았다.

1층 동쪽 출입구에서 3층 가기

바이욘 동쪽 출입문

1층 회랑을 한바퀴 돌았거나 부조를 안보고 바로 3층으로 가고자 하는 경우에는 동쪽 출입문으로 들어간다.

바이욘 동쪽 출입문

탑문을 지나...

바이욘 2층 회랑

바이욘 3층으로 올라간다.

바이욘 3층

바이욘 3층

바이욘 3층 모습이다. 중앙 성소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한바퀴 돌면서 사면상을 볼 수 있다. 중앙 성소 내부에는 불상이 있다. 시바 신의 상징인 링가가 들어 있는 탑들도 있다.

바이욘 사원 중앙 성소탑에 하나의 커다란 돌로 만든 불상이 있었으므로 바이욘은 불상이 있는 돔을 먼저 만들고 이후 탑을 쌓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사원이었는데, 이후 탑들이 늘어나고 회랑도 생겨서 지금과 같은 모습의 사원이 된 것으로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3층 중앙 성소는 복장 제한이 있다. 모자, 선글라스, 슬리퍼를 제한한다. 남자는 민소매, 반바지 차림을 금지하고, 여자는 민소매, 미니스커트를 금지한다.

바이욘 3층 사진

바이욘의 사면상은 단 하나라도 같은 얼굴이 없다고 한다. 바이욘에는 중앙탑을 비롯해서 52의 탑이 있었으나 현재는 37개만이 복원되었다. 탑 둘레에 173개의 거대한 인물상이 있다. 실제로 가보면 비슷 비슷하게 보인다. 미리 멋진 사진을 보고 가서 똑같이 찍으려고 해도 사진에서 본 사면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 평소 사진찍는 구도에 약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가면 문화 해설사가 유적 설명도 하지만, 사진 포인트도 잘 가르쳐 준다. 해설을 듣는 것은 자제하더라도, 한 두번 촬영 포인트를 따라해보자.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하면 원근감을 이용해서 사면상과 뽀뽀하는 장면이라든가, 사면상을 손바닥에 올려 놓거나, 손가락 안에 집어넣는 누구나 한장씩 갖고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이 바이욘의 사면상의 의미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

초기 유적을 발굴 했을 당시의 학자들은 힌두 신화의 브라흐마라고 주장했다. 브라흐라가 4개의 얼굴로 표현되기 때문이었다.

다수 견해는 자야 바르만 7세 본인의 얼굴로 불교의 관음 보살이라고 생각한다. 자야 바르만 7세가 관음보살이 되어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했다는 것이다. 병원, 상인들을 위한 시설, 도로, 관개 수로 확충을 보면 크메르 왕국에서 가장 백성들을 위한 일을 많이 한 왕이다. 프랑스 극동 연구소 2번째 원장이었던 조르주 세데스(George Coedes)가 주장하였다. 문둥이왕 테라스의 문둥이왕 조각과도 얼굴 모습이 비슷하다.

최근 일본 학자들에 의해 힌두 신화의 다양한 얼굴들을 표현한다는 견해도 있다. 둥근 얼굴에 살구씨 모양의 눈을 가진 것은 남신인 데바, 각진 모습에 눈이 돌출된 것은 아수라, 갸름한 얼굴에 눈꼬리가 올라간 것은 여신인 데바타라고 한다. 자야 바르만 7세 이후 불교 국가에서 힌두 국가로 복귀 되면서 관음 불상이 제거되고, 중앙 성소에 시바의 상징인 링가가 세워진 것처럼 관음 불상을 표현한 것이라면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바이욘 3층 사면상

위에서 본 이미지를 촬영한 장소에서 카메라 각도를 바꾸어 보았다. 매우 다른 느낌이 난다. 아침, 점심, 저녁 빛에 따라 사면상은 여러 얼굴로 변한다.

바이욘 부근

바이욘 복원

현재 복원 되지 못하여 쌓여 있는 석재가 약 6만개 정도 된다고 한다. 바이욘 사원에 사용한 석재가 약 42만개 정도 된다고 한다.

바이욘이 앙코르 와트 보다 80년 후에 지어졌는데도 앙코르 와트보다 더 훼손된 이유를 석재의 질에서 찾는 견해가 있다. 바이욘 전기에는 질 좋은 회색 사암을 사용하였고, 바이욘 후기에는 질이 조금 떨어지는 황갈색 사암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후기에는 전기와 다른 프놈 쿨렌 채석장에서 가졌는데, 둘 사이의 강도가 다르다고 한다.

바이욘 코끼리

앙코르 톰 남문 앞에서 코끼리를 타고 바이욘 주변을 관광하는 체험 투어가 있다. 코끼리 투어는 사원이 재발견된 이후 초창기에 이용하던 교통 수단으로 왕이 된 기분으로 사원을 둘러 볼 수 있다. 요금은 약 10US$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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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욘 부조 자세히 보기]

• 바이욘 1층 회랑

• 바이욘 2층 회랑 | 바이욘 동쪽 부조 남쪽면 / 바이욘 남쪽 부조 / 바이욘 서쪽 부조 / 바이욘 북쪽 부조

앙코르 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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