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프레아 칸
프레아 칸

프레아 칸 (Preah Khan)

프레아 칸은 그랜드 투어 코스 중에서 가장 볼 만한 사원이다. 복원이 잘 된 곳과 복원이 안 된 곳이 섞여 있어서 두 곳의 재미를 모두 느낄수도 있지만, 따 프롬, 바이욘 등 주변의 개성 넘치는 사원들에 비해서는 볼 만한 것이 적다고 볼 수 있다.

프레아 칸에는 거대한 가루다 상, 중앙 성소의 스투파와 빛내림, 문틀 상단의 압사라 조각, 그리고 신성한 칼이 보관되었다는 전설의 2층 건물 등 흥미로운 요소들도 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면 중앙 성소로 이르는 중앙 길에서 옆으로 조금씩 벗어나보자. 따 프롬과 달리 한적한 곳에서 허물어진 사원과 스펑 나무 모두를 사진 속에 담을 수 있다. 일반 관광객이 제일 좋아하는 사진찍는 장소는 중앙 성소의 스투파와 그 부근 건물들이다. 좋은 사진을 위해서는 빛이 내리는 아침 일찍이나 일몰 직전의 오후 늦게 가는 것이 좋다.

프레아 칸은 자야 바르만 7세(1181~1220)가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1191년 만든 불교 사원이다.

프레아 칸은 신성한 칼이란 뜻이다. 프레아가 신성하다는 뜻이고, 칸은 칼을 말한다. 프레아 칸에 크메르를 지키는 신성한 칼이 보관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원 이름이 이 전설 때문에 붙여졌으나, 현재는 어느 곳에 보관하였는지, 또한 진실인지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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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앙코르 공통권 : 37US$(1일권) / 62US$(3일권), 72US$(7일권). 유적지마다 입장권을 검사한다

[관람 시간] 새벽~저녁 / 매표소 운영시간 05:00~17:30

[닫는 날] 없음

[프레아 칸] Preah Khan | ប្រាសាទព្រះខ័ន | 쁘레아 칸
자야 바르만 7세 건축물 지도

자야 바르만 7세가 건축한 사원들의 위치이다. 크메르 제국의 건축왕이라 불릴만큼 많은 건축 사업을 한 왕이 자야 바르만 7세이다. 프레아 칸에 대한 건축학적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앙코르 톰 남문, 따 프롬, 바이욘, 니악뽀안, 따 솜, 반띠아이 끄데이를 연관시켜서 보는 것이 좋다. 각 사원들만의 특징도 있지만, 자야 바르만 7세 때에 유행한 건축 방식을 개별 사원에서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하였고, 차이점은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바이욘을 건설한 자야 바르만 7세는 현재 캄보디아 사람들에게서 크메르 왕국의 왕들 중에서 수리야 바르만 2세와 함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존경받는 왕이다. 앙코르 와트 건설자인 수리야 바르만 2세(참파를 식민지화 했다)가 죽자 전국은 혼란에 빠지고, 점차 주변국의 세력은 강해진다. 결국 1177년 참파(베트남)에게 져서 왕은 살해 되고 수도는 빼앗기고,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 이때 자야 바르만 7세가 등장해서 빼앗겼던 수도 앙코르 톰을 1181년 톤레샵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다시 되찾는다. 대외적으로는 앙코르 왕국의 국가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였으나, 대내적으로는 반대 세력인 귀족과 브라만 사제들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통적인 데바 라자 의식을 하지 않고, 불교식의 부다 라자를 통해 왕위에 오른다. 아버지가 자신이 왕이 된 후 나중에 추서된 왕(다수 견해)이라서 왕위 정통성이 약하였고, 서민들이 믿던 불교를 믿으면서 상류 계급과의 마찰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원 건축을 통해서 왕위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하였고, 도로를 정비하고, 전국에 병원과 숙박 시설을 짓고, 관개 수로를 확충하는 등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사원 건설과 정복 전쟁에 많은 비용이 들어갔고, 자야 바르만 7세 사후에 주변 국가의 성장으로 크메르 제국은 서서히 힘을 잃어가게 된다.

프레아 칸이 있는 이 지역은 자야 바르만 7세가 참파(베트남)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했던 곳이다. 그래서 자야 바르만 7세는 이 지역을 자야스리(신성한 승리)라고 하고, 이곳에 여러 건축물을 지었다. 아버지를 모신 프레아 칸도 이 곳에 만들었다. 인공 저수지인 자야타타카(북 바라이)를 만든 후 수상 사원인 니악 뽀안(병원)을 만들었고, 따 솜을 만들었다. 이 지역에서 남쪽에 있는 어머니를 모신 불교 사원 따 프롬도 자야 바르만 7세의 작품이다.

프레아 칸 지도

프레아 칸 지도이다. 해자를 따라 동서 800m x 남북 700m의 외벽이 설치되어 있다. 중앙 성소가 있는 내벽은 동서 200m x 남북 175m 이다.

프레아 칸 서쪽 주차장, 링가

프레아 칸 서쪽 주차장에 내린 모습이다. 이곳에서 입장권 검사를 한 후, 참배로를 따라 간다. 참배로를 따라 양쪽에 링가가 서 있다.

프레아 칸 변형된 링가

프레아 칸의 링가를 보면 이전 시대와는 달리 변형된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링가 밑 부분은 가루다가 4면에서 받치고 있고, 그 위로 4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었으나, 모두 훼손되고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자야 바르만 7세이후 불교에서 힌두교로 종교가 바뀌는 과정에서 불교 탄압이 있었고, 이 때 불상이 훼손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링가 밑 부분의 동물의 모양이 사자에 가깝고, 독수리의 부리가 잘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양 팔과 다리 주변으로 새 깃털을 장식하여 가루다가 날아가고 있는 것을 형상화한 것과 자야 바르만 7세의 건축물에 가루다가 중요하게 부조되는 것을 볼 때 이 동물은 사자가 아닌 가루다일 가능성이 높다. 학자에 따라서는 앙코르 참배로에 사자상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자라고 생각하는 일부 견해도 있다.

시바 신을 모시는 사원에 링가와 요니가 있게 된 전설이 재미있다. 옛날 옛적에 수행자들이 세상에 산적한 고민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시바 신이 지나가다가 이를 보고는 장난삼아 젊은 남자로 변신하고는 수행자들의 부인들을 유혹해서는 같이 춤추고 밤새 놀았다고 한다. 그 모습을 수행자들이 보고는 화가 나서 그 젊은 남자에게 성기가 잘리는 주문을 걸었으나, 시바 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바 신의 화만 부추겨서 시바 신은 스스로 성기를 자르고는 사라진다. 이후 세상의 모든 생물들의 생식이 중단되어 버린다. 수행자들이 삭티를 찾아가 이 문제를 의논하자, 삭티는 이 일이 시바 신이 자신의 성기를 자른 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삭티 본인이 직접 여자의 성기 모양으로 변신해서 시바 신을 유혹하게 된다. 시바 신이 유혹에 넘어가 다시 자신의 성기를 붙이자, 모든 생물들의 생식도 다시 시작되었다. 수행자들은 시바 신이 젊은 남자로 변신한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는 앞으로는 시바 신의 사원임을 알 수 있도록 사원 안에 생식의 상징인 링가와 요니를 모시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프레아 칸 서쪽 고푸라

프레아 칸의 링가 참배로가 끝나는 지점에 해자와 다리 위로 우유 바다 휘젓기의 조각이 나온다. 첫번째 서쪽 고푸라와 왼쪽에 거대한 가루다 상이 있다. 가루다 상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앙코르 톰 남문 설명 보기]

프레아 칸 서쪽 진입로의 우유의 바다 휘젓기 조각들은 앙코르 톰의 남문의 구조와 거의 같다. 건축적 특징과 힌두 신화 이야기는 앙코르 톰 남문에서 자세히 설명하였으므로 참조한다.

프레아 칸 가루다상

프레아 칸의 외벽을 따라 가루다가 양 발로 나가의 몸통을 꽉 잡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높이 5m의 가루다 상을 50m 간격으로 총 3km 둘레의 외벽에 72개를 만들었다. 나가 위에 가루다가 올라타거나 나가보다 가루다를 더 중요하게 부조한 것은 자야 바르만 7세 때의 건축적 특징이다.

프레아 칸의 외벽은 라테라이트로 튼튼하게 만들었으며, 외벽 위의 불상 부조들은 모두 훼손되었다. 외벽은 라테라이트이나, 가루다 상은 사암으로 만들었다.

가루다(Garuda)는 독수리의 얼굴에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비슈누 신이 타고 다니는 상상의 동물이다. 앙코르 유적에서는 비슈누 신의 화신인 크리슈나가 가루다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가루다 다리쪽과 팔쪽을 보면 날개가 빗금으로 새겨져 있다. 가루다는 주로 서있는 자세나 하늘을 날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고, 두 팔을 하늘을 향해 위로 벌리고 있다.

가루다는 우유 바다의 휘젓기때 아난타가 뽑은 만다라 산을 바다로 옮기는 일을 하였다.

라마야나 이야기중 랑카 섬 전투 중의 이야기에도 가루다가 나타난다. 아수라 라바나의 아들 인드라지트가 휘두른 뱀 창(나가파사, Nagapasha)으로 인해서 라마와 락슈마나는 온 몸이 뱀으로 꽁꽁 묶이고는 기절해 버린다. 정신을 차린 라마가 죽을 것 같다면서 원숭이 부대에게 후퇴할 것을 권한다. 이에 동맹군인 원숭이들이 놀라면서 군의 사기도 떨어진다. 뱀 창에 묶인 라마를 구하기 위해 하늘에서 가루다가 내려왔다. 독수리인 가루다와 뱀은 천적이었다. 가루다는 라마와 락슈마나의 뱀들을 쫓아내어 상처도 치료해주고, 라마가 이 전쟁에서 지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려준다.

가루다는 현재 인도네시아를 상징하는 문장인 인도네시아 국장,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회사의 명칭에 사용하고 있다.

라테라이트(laterit)는 열대 지방에 분포하는 적갈색의 흙이다. 라테라이트는 열대 우림의 고온 다습한 환경때문에 습기가 있을때는 부드럽지만, 건조한 환경에 노출되면 토양의 유기물이 제거되면서 매우 단단해진다. 화학 반응으로 철분이 산화되면서 붉은 색을 띤다. 앙코르 유적에서는 라테라이트 벽돌을 사용하여 담벼락을 만들기도 하였다. 앙코르 유적이 오랫동안 비바람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건물 내부에 라테라이트로 전체적 형태를 잡은 다음, 겉 부분만 사암으로 아름답게 장식하였기 때문이다.

프레아 칸 서쪽 고푸라

프레아 칸의 외벽 서쪽 고푸라이다. 자야 바르만 7세 때의 고푸라(탑으로 된 문)의 경우 사면상이 있는데, 이 곳에는 없다.

프레아 칸 내벽 서쪽 고푸라

프레아 칸의 외벽 서쪽 고푸라를 지나 울창한 경내를 따라 가면 내벽 서쪽 고푸라가 나온다.

프레아 칸 경내도

프레아 칸의 경내도이다. 중앙 성소가 있는 내벽은 동서 200m x 남북 175m 이다. 일반적인 관광객은 서쪽 고푸라에서 계속 직진해서 중앙 성소를 지나 2층 건물을 보고, 무희의 홀로 나와서 동쪽 출입구로 나간다. 동쪽 고푸라가 제일 크다.

프레아 칸 내벽 서쪽 고푸라

프레아 칸의 서쪽 십자형 고푸라이다. 문지기를 좀 더 자세히 보면...

프레아 칸, 문지기

바이욘 사원의 문지기처럼 이 곳 프레아 칸의 문지기(수문장)도 목이 없다. 당시 외국(참파 : 베트남, 아유타야 : 태국)과의 전쟁으로 머리가 잘려나갔다. 상대 국가의 국력 약화를 바라면서 자른 것으로 당시 동남아 국가들 간의 전쟁에서의 전리품으로 생각하면 된다.

서쪽 내벽 고푸라 프론톤에 라마야나 이야기가 부조되어있다. 짧은 일정에서는 프레아 칸에서는 부조를 찾아 유적을 돌아다니기 보다는 유적이 넓기 때문에 프레아 칸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적인 것들을 찾아 다니는 것이 좋다. 시간이 없더라도 프레아 칸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부조가 있어 소개한다.

프레아 칸, 중앙 성소 가는길

서쪽 내벽 고푸라에서 중앙 성소를 바라본 모습이다. 중앙 성소로 갈수록 문이 작아진다. 종교적, 정치적으로 저절로 몸을 낮추기 위함과 함께 군사적으로 적군보다 유리한 상황에서 싸우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문을 점점 작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중앙 성소까지 직진해서 간다. 중앙 성소까지 긴 복도와 중간에 문이 나오지만, 스투파가 나올때까지 직진하면 된다.

서쪽 고푸라에서 중앙 성소로 바로 가기보다는 시바 신전으로 빠져나가서 중앙 신전으로 다시 아버지 다란인드라바르만 2세(Dharanindravarman II)를 위한 신전으로 가는 것이 프레아 칸을 좀 더 잘 느낄 수 있는 경로이다. 설명의 편의상 일반적인 경로부터 먼저 설명한다.

프레아 칸 중앙 성소와 그 부근

프레아 칸, 스투파

프레아 칸의 중앙 성소 제일 중앙이다. 앙코르 사원에서는 볼 수 없던 스투파가 놓여 있다. 스투파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사리탑이다. 자야 바르만 7세 때에는 관음보살상이 있었다고 추정되고, 16세기 프레아 칸이 소승 불교 사원이 되면서 스투파가 놓이게 되었다.

스투파 주변 건물 문 위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다. 프레아 칸에 가면 누구나 자신의 손 위에 빛을 올려놓은 사진을 찍는다. 마치 이탈리아 피사의 탑을 자신의 몸으로 떠 받치듯이...

프레아 칸 사진찍기 좋은 곳

프레아 칸 스투파 부근에는 사진 찍기 좋은 곳들이 있다. 프레아 칸 중앙 성소 스투파가 있는 곳에서 북서쪽(1), 남서쪽(2), 동남쪽(3)으로 나가면 작은 건물들과 스펑나무가 있는 멋진 사진들을 찍을 수 있다. 경내도를 보면 어디인지 어려울 것 같지만 실제로 가보면 찾기는 어렵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아 칸, 중앙 성소

사진은 스투파에서 북서쪽(위 지도 1번)에 위치한 곳이다.

프레아 칸, 중앙 성소

북서쪽의 한 벽면이다. 수행자들이 무릎을 세운 자세로 앉아 있다. 재미 있는 것은 그 옆을 보면 나가 두 마리의 몸이 서로 꼬여 있다. 그리고 두 나가를 가루다가 밑에서 들고 있는 모습이다. 수행자들하고도 많이 촬영하지만...

프레아 칸, 중앙 성소

스투파에서 남서쪽(위 지도 2번)으로 가면, 벽면에 아름 여신상과 함께...

프레아 칸, 중앙 성소

파인 흔적이 있는 곳이 있다. 위 북서쪽과 동일하게 수행자의 모습인지 불상이라서 훼손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곳에 친구들과 나란히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위 사진의 북서쪽 수행자들은 원래 불상이 새겨져 있던 것을 불교 탄압 시절에 수행자의 모습으로 바꾸었다는 견해가 있다.

프레아 칸, 중앙 성소

스투파에서 동남쪽(위 지도 3번)으로 가면, 허물어진 건물더미와 함께 붉게 변한 사암 건축물이 있다.

프레아 칸, 중앙 성소

붉게 변한 사암으로 인해서 홍조를 띠는 크메르 여신상이 더 마음을 끄는 부조들이다.

프레아 칸, 중앙 성소 제2내벽

중앙 성소 제2내벽 남서쪽 모서리 탑이다. 중앙 성소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폐허 상태의 프레아 칸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레아 칸, 중앙 성소 구멍

중앙 성소 주위의 벽을 보면 구멍들이 뚫린 것이 보인다. 이 구멍은 청동으로 된 판금을 붙인 자리로 생각된다. 비문에 1,500톤의 청동을 프레아 칸에 사용하였다고 적고 있다.

프레아 칸 무희 홀과 그 부근

프레아 칸 경내도

프레아 칸의 경내도이다. 중앙 성소를 지나 2층 건물을 보고, 무희의 홀로 나와서 동쪽 출입구로 나간다.

프레아 칸, 무희의 홀 가는 길

중앙 성소에서 동쪽으로 계속 직진해서 나가면 무희의 홀이 나온다.

프레아 칸, 무희의 홀, 압사라

무희의 홀이다. 진행 관광 경로에서 뒤돌아 본 모습이다. 무희 홀 문틀 상단이나 기둥에 압사라가 조각되어 있다.

프레아 칸, 무희의 홀, 압사라

문틀 상단에 압사라가 부조되어 있어 무희의 홀이라고 부르고 있다.

프레아 칸, 무희의 홀, 2층 건물

무희의 홀에서 북쪽을 보면 2층 건물이 보인다.

프레아 칸, 2층 건물

2층 건물 주변 모습이다. 2층 건물 앞으로 라테라이트로 만든 건물이 있고, 그 주변을 나가로 만든 난간으로 서로 연결하고 있다.

프레아 칸, 성골탑

라테라이트로 계단을 만들고, 나가 난간이 있고, 사자상을 세운 것으로 보아 중요한 건물이었던 것 같다.

학자에 따라서는 성골탑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프레아 칸, 사자상

프레아 칸의 사자상이다.

프레아 칸, 2층 건물

프레아 칸에서 가장 특색 있는 건물이다. 유럽 그리스 신전과 같은 원통형의 기둥으로 인하여 유럽에 온듯한 착각도 들게한다. 건물 모양이 서양 건축양식과 많이 닮아서 서양과의 교류를 추측하는 견해도 있지만, 밝혀진 바는 없다.

프레아 칸이라는 이름이 신성한 칼을 의미한다고 하였는데, 이 곳에 신성한 검을 보관한 것이 아니냐는 견해가 있다. 그 외에도 도서를 보관한 장소 내지 창고로 사용한 건물이라는 견해가 있다.

2층 건물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없다. 2층으로 보이는 둥근 기단 기둥이 긴 1층이라는 견해도 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목조 계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견해도 있다.

주달관의 진랍풍토기에 신성한 칼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새로운 국왕(자야 바르만 8세의 딸과 결혼한 인드라바르만 3세, 1295~1307)은 죽은 왕 자야 바르만 8세의 맏사위였다. 그는 병권을 담당하는 직위에 있었다. 그의 부인은 죽은 국왕이 사랑하는 딸이었다. 이 딸이 왕권을 상징하는 선왕의 금으로 된 보검을 몰래 훔쳐 남편에게 주었다. 이 때문에 선왕의 친아들이 왕권을 이어받지 못했다. 선왕의 아들이 군대를 일으켜 복위를 시도했으나, 국왕이 먼저 간파하여 발을 자르고 어두운 암실에 가두었다.

프레아 칸, 내벽 동쪽 고푸라

프레아 칸 내벽 동쪽 고푸라이다. 이 곳으로는 왕만이 이용하던 출입구이다. 신하들은 서쪽 출입구를 이용하였다. 사진에 보이는 스펑나무 부근에서 사진을 많이 찍는다.

프레아 칸, 불꽃의 궁전

프레아 칸 내벽 동쪽 고푸라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더 내려오면 불꽃의 궁전(House of Fire, 광휘의 궁)이 있다. 이 건물은 종교적으로 신성한 보물을 운반할 때 잠시 쉬어가던 중간역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따 프롬을 비롯해서 전국적으로 120여개가 있었다고 한다.

프레아 칸, 외벽 동쪽 고푸라

프레아 칸 외벽 동쪽 고푸라이다. 서쪽 고푸라와 동일하게 우유 바다 휘젓기와 가루다상을 볼 수 있다.

프레아 칸, 가루다

가루다의 보존 상태는 동쪽 고푸라가 서쪽 고푸라보다 더 좋다.

프레아 칸, 변형된 링가

동쪽 주차장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서쪽 출입구와 동일하게 참배로 양쪽에 변형된 링가가 세워져 있다.

프레아 칸, 북바라이

동쪽 주차장에서 동쪽을 보면 북바라이가 있다.

북바라이(자야타타카)는 자야 바르만 7세가 만든 인공 저수지이다. 이 저수지 위에 만든 수상사원이 니악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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