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 혼간지

히가시혼간지 (Higashi Honganji Temple)

히가시 혼간지는 죠도신슈(정토진종) 신슈오타니(眞宗大谷)파의 본산이다. 혼간지(니시 혼간지)의 동쪽(히가시)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히가시 혼간지의 고에이도는 일본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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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 혼간지

[입장료] 없음

[여는 시간] 3월~10월 》05:50~17:30 / 11월~2월 》06:20~16:30

[닫는 날] 없음

건물 내부 촬영 금지

[가는 방법]

JR 쿄토역에서 걸어서 간다. 7분 정도 걸린다.

니시 혼간지에서 동쪽으로 걸어서 간다.

5, 26, 101번 시버스 : 카라스마 로쿠죠 또는 나나죠(시치죠) 버스 정류장, 205번은 카라스마 나나죠 버스 정류장. 모두 쿄토역 발착이다.

카라스마선 : 고죠역(K10) 6번 출구

정토진종의 창시자인 신란(親鸞)스님은 1262년 90세에 세상을 떠났다. 원래 올바른 수행자들은 장수하는 법이지만, 90세라면 당시의 평균 수명의 2배 정도라고 생각된다. 스님 사후에 딸 카쿠신니가 쿄토의 오타니에 스님의 사당을 지었다. 이 사당이 뒤에 혼간지의 기반이 되었다. 오타니파라는 이름은 사당이 지어진 오타니의 땅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니시 혼간지와 히가시 혼간지의 기본적 배치와 구성은 비슷하다. 아미다도와 고에이도가 나란히 있고, 각 건물 정면에 문을 배치하였다.

[히가시혼간지] Higashi Honganji Temple | 東本願寺

쿄토역에서 북쪽으로 걸어서 간다. / 니시 혼간지에서 동쪽으로 걸어 간다.

5, 26, 73번 버스를 타고 카라스마 나나죠(시치죠) 버스 정류장에 내린다. 쿄토역에서는 버스를 탈 필요는 없다. / 지하철 카라스마센 고죠역에서 내린다.

카라스마 나나죠(시치죠) 버스 정류장.

히가시 혼간지 안내도.

아미다도문.

아미다도. 아미다도는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곳이다. 아미타 부처님은 정토종과 정토진종의 본존불이다. 오른쪽에 고에이도가 복원 공사 중이다. 지금은 복원을 끝내고, 왼쪽의 아미다도가 공사 중이다.

고에이도문. 1911년에 재건되었다. 쿄토의 3대문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큰 문은 난젠지, 치온인에서 볼 수 있다.

복원 공사 중인 고에이도(御影堂). 종파의 창시자의 그림(또는 조각)을 모신 집을 고에이도라고 한다. 고에이도는 여러 번의 화재로 소실된 후 1895년에 현재의 건물로 재건되었는데 정면 길이 76m, 옆면 길이 58m, 높이 38m로 약 12~13층 높이이다. 기와 175,967장이다. 일본에서 가장 큰 목조 건축물이라고 한다. 나라의 토다이지 다이부츠덴은 정면 길이 57.01m, 옆면 길이 50.48m, 높이 48.74m이다.

지금은 복원 공사를 끝냈다. 옆의 아미다도를 복원 공사하는 중이다.

일본 건물의 넓이는 타타미라는 매트로 계산하는 방식을 흔히 쓰는데 고에이도는 타타미 927매이다. 타타미의 크기는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일반적으로 90cm X 180cm이다. 즉 한사람이 누울 정도의 크기로 지금의 싱글 침대보다 조금 작다. 아마 당시 사람들의 체격에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지금의 싱글 침대 사이즈와 같을 것이다. 타타미927매라면 927명이 누울 수 있는 넓이라는 뜻으로 엄청난 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타타미는 볏짚으로 속을 채우고, 골풀(등심초)로 짠 돗자리(첩표)로 감싼 것이다.

고에이도의 모습. 고에이도에는 정토진종을 창시한 신란의 상이 안치되어 있다.

고에이도 앞 쵸즈야(또는 테미즈야). 손씻는 곳이다.

"마시지 마시오". 일본인들은 당연히 마시지 않지만 외국 관광객들 중 마시는 사람들이 있어 경고판이 있다. 일본의 절이나 진쟈의 물은 마시는 물이 아니라 손을 씻는 물이다. 목욕을 해서 몸을 깨끗이하고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손과 입을 깨끗이 씻고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마셔도 되는 경우에는 대부분 별도의 안내가 있다. 왼손부터 씻고 다음 오른손을 씻는다. 입을 헹구고 다시 왼손을 씻는다. 입을 헹구는 것은 생략할 수 있다.

참배 접대소. 정토진종에 대한 소개 등 각종 안내 팜플렛등이 있다. 정토진종의 교세를 나타내듯이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히가시 혼간지에는 케즈나(毛網)라는 신도들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밧줄이 전시되어 있다. 1864년 혼간지는 화재로 전부 불타 버려 1880년에 다시 건축했다. 재건 공사에 사용되는 나무들이 너무 커서 당시의 밧줄로 묶어 운반하는데 밧줄이 끊어져 사고가 계속 일어나자, 여신도들의 머리카락과 모시를 꼬아 밧줄을 만들었다고 한다. 53개의 밧줄이 있었는데, 가장 큰 것은 길이 110m, 굵기 40cm, 무게 약 1톤이라고 한다.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에 의한 강제 개항되어 서양 세력의 침략에 의해 반노예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민중을 지배했고, 외국 세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일본의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들은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켰다.

서양에 대한 불안과 정치적 혼란으로 1860년대의 일본은 민중들에게 혼돈 그 자체였다. 이런 불안의 시기에는 종교와 이데올로기주의자들이 극성을 부리게 된다.

극우파 신정부 세력은 신토(일본 전통 신앙)를 국교로 삼기위한 정치적 조치로 신토와 불교를 분리한다는 신불 분리 정책을 시행했다. 신불 절충으로 민중세력을 확보했던 불교 세력들은 일본 최대종파인 정토진종을 중심으로 강력히 반발했다. 이들은 불교 세력의 재결속을 위한 상징으로 히가시 혼간지의 고에이도를 일본 최대의 건물로 건축했다. 그리고 이런 물질적인 과시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신도들의 마음을 모으는 방안으로 머리카락 밧줄을 창안했다. 불교 신도들은 열렬히 호응하여 전국의 여자 신도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쿄토로 보냈고 케즈나를 만들 수 있었다.

[니시혼간지와 히가시혼간지의 분열]

이시야마 혼간지(현재의 오사카성의 자리)는 전략적, 경제적으로 극히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 통일의 야심을 가지고 있던 오다 노부나가는 혼간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마침내 혼간지를 비우라는 퇴거 명령을 내렸다.

혼간지 11대 문주인 켄뇨는 거대한 세속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퇴거 명령을 거부하고, 오다 노부나가를 부처의 적이라 칭하고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이 이시야마 전쟁(세칭 10년 전쟁)이다.

병법의 천재라는 오다 노부나가는 이시야마 혼간지의 점령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막강한 혼간지의 세력은 오다 노부나가와 맞서 10년간 전쟁을 계속했다.

1580년 켄뇨는 마침내 오다 노부나가에게 굴복하여 화친을 하게 됐었다. 그러나 장남 쿄뇨는 이에 반대하고 농성을 계속하였지만 왕의 칙령을 빙자한 퇴거 명령에 결국 굴복하여 이시야마 혼간지를 내어주었다.

오다 노부나가를 승계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혼간지에 우호적이어서 쿄토에 혼간지를 지을 수 있는 땅을 기증하였고 지금의 니시 혼간지가 지어졌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계속 대립하다가 쫓겨난 쿄뇨는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집권한 후 (니시)혼간지 동쪽의 땅을 하사받아 1602년 히가시 혼간지를 설립했다. 니시 혼간지가 지어진지 불과 11년 후에 히가시 혼간지를 지었다. 이후 혼간지는 분열되었고, 혼간지의 세속적 권력은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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