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창경궁
창경궁

창경궁 (Changgyeonggung Palace)

창경궁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이었다. 1418년 세종이 태종을 위해 수강궁을 만들었다. 1484년 성종이 세조의 비 등을 위해 궁궐을 늘리고 창경궁이라고 불렀다. 창덕궁의 이궁으로 사용되었다. 창경궁 명정전은 왕의 즉위식이 거행되는 곳으로, 조선의 궁궐 정전 중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 다른 대부분의 건물들이 남향인데 반해 명정전은 특이하게 동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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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입장료] 1,000원

* 5대궁 연계 통합 관람권 : 1장의 관람권으로 경복궁, 창덕궁(후원 포함), 창경궁, 덕수궁, 종묘 관람. 10,000원. 유효기간 1개월

[여는 시간 (입장 마감 시간)] 4월~10월 》09:00~18:00 (17:00) / 12월~2월 》09:00~17:00 (16:00) / 11월, 3월 》09:00~17:30 (16:30)

[닫는 날] 월요일

1909년 일본이 창경원으로 격을 떨어뜨려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사용하였다. 1983년 부터 시작된 창경궁 본래 모습 찾기 공사로 동물원과 놀이 시설을 철거하고 일부 전각들을 보수하여 궁궐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크게 보기]

홍화문~명정전

홍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이다. 경복궁의 광화문, 창덕궁의 돈화문은 남향이다. 일반적으로 궁궐의 정문은 남향인데, 홍화문은 동향이다. 성종(1484) 때에 창건하였으나 조왜 7년 전쟁 때 없어졌다. 현재 문은 광해군 때에 다시 만든 것이다.

궁궐의 정문은 보통 외전의 정전과 일직선상에 만든다. 홍화문 - 옥천교 - 명정문 - 명정전에 이르기 까지 일직선이다.

홍화문를 들어서면 옥천교가 보인다. 중앙의 길이 좌우 길보다 조금 더 높다. 왕이 다니는 어도이다. 조회가 열릴 때에는 문신은 오른쪽 길로, 무신은 왼쪽길로 입장하였다.

옥천교.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정전의 정문인 명정문 사이에는 금천이 흐르고 그 위에 옥천교를 만들었다. 금천은 백성의 구역과 왕의 구역을 나누는 상징성이 있다.

명정문이다. 정전인 명정전의 정문이다. 옥천교로 이어진 길의 폭은 명정문의 소맷돌 넓이와 같다. 정전의 정문인데도 소맷돌에 문양과 답도 등의 장식을 하지 않았다.

명정문을 지나면 정면에 명정전이 보인다. 명정전 앞 마당에는 박석을 깔고 품계석을 세웠다.

명정전이다. 창경궁의 정전이다. 현존하는 궁궐의 정전 중에서는 가장 오래 되었다. 홍화문과 마찬가지로 다른 궁궐과 다르게 동향을 하고 있다.

명정전 월대의 소맷돌과 답도이다. 태극, 구름 문양이 새겨져 있고, 서수가 지키고 있다. 답도에는 봉황이 새겨져 있다.

명정전의 내부 모습이다. 중앙에 어좌가 있고, 그 뒤로 일월오악병이 있다.

명정전 남쪽에 문정전이 있다.

문정전~숭문당

문정전이다. 왕이 업무를 보던 편전이다. 일반적으로 편전은 정전 뒤에 일직선으로 있으나, 문정전은 명정전 남쪽에 있다. 그리고 명정전이 동향인 것과 달리 문정전은 남향이다.

영조가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라고 명한 곳이다.

문정전 가는 길은 명정전 뒤쪽으로 가도 되지만, 문정문을 통해서도 들어 갈 수 있다.

네모는 문정문이고, 동그라미는 숭문당이다. 지금은 문정전과 숭문당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나, 예전에는 담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숭문당을 왕이 경연을 열던 곳이다. 앞쪽 툇간을 개방하여 누마루 형식으로 만들었다. 영조는 이 곳에서 성균관 유생을 접견하고 시험도 보았다.

명정전 뒤쪽의 행각이다. 빈양문을 나서면 왕과 왕비가 생활하는 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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